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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표 비례대표 공천을 보면서 야권 지지자들이 혼란에 빠져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것. 일부러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할 최악의 패착을 두고 말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민주에 우호적인 개혁 언론들조차 "막장 공천", "공천 참사", "최악수", "결정적 오류"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과연 김종인 대표가 이번 비례대표 명단을 통해 국민들에게 던진 메시지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비례대표 명단은 그 자체가 한 정당이 국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내놓은 최고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이번 김종인표 비례대표 명단은 한 마디로 '새누리당 2중대 선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당명을 표기하지 않고 상위그룹에 포진된 인사들의 면면만 보면, 새누리당이 발표한 비례대표 명단수준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야당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가장 잘 보여주어야 할 비례대표 1번부터 보수적인 인물을 내세웠다. 게다가 논문 표절 논란으로 도덕성에도 문제가 있는 인사이다. 야당 비례대표 역사에서 정체성과 도덕성 면에서 이렇게 흠결이 큰 인사를 1번으로 내세운 것은 최초의 일이다.
지금까지 역대 야당의 비례대표 1번은 야당의 정체성을 상징하거나 최소한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인사들이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 1번은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였다.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과 노동학 박사에서 보듯, 노동자 권익 보호라는 야당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 인사였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은 장향숙 한국장애인연합공동대표였다.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인물을 맨 앞에 세운 것이다.
사실상 남자 비례대표 1번인 2번 자리에는 김종인 대표 본인이 셀프 공천을 했다. 말 바꾸기와 염치 없는 건 둘째 치고, 국민 알기를 우습게 보는 처사가 아닐까?
김 대표가 지명권을 행사해 배정된 A 교수는 '론스타 먹튀'를 변호하는 칼럼을 쓰는 등 외국 투기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다른 당선권인 A그룹에 배정된 한 인사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선후보의 안보 공약을 '종북 좌파'라고 비난하며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한 단체에 참여한 사람이다. 이는 더민주 스스로 야당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
더민주, 과연 '야당 맞는지' 자문해봐야
이쯤 되면 더민주가 과연 야당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봐야 할 사안이다. 이번 비례대표 명단은 '김종인표 더민주 보수우경화'가 단순히 중도표를 얻기 위한 전략적 차원이 아니라는 걸 드러낸 상징적 사건인 셈. 중원 공략이라는 미명 하에 야당의 기둥뿌리를 뽑아버린게 아닐까.
실제로 김 대표가 더민주의 비상대권을 움켜쥔 뒤부터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을 한 번 돌아보라.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무조건 반대가 능사가 아니라며 북한 궤멸론을 주장해 전체 야권을 놀라게 했다. 김대중·노무현의 한반도 평화 정책을 부정한 것. 야3당 국회의원 39명이 나서 192시간 동안 진행한 필리버스터를 단칼에 중단시키고, 국민의 인권 침해가 불 보듯 뻔한 테러방지법 통과를 묵인했다.
김 대표의 노선 문제에서 개혁·진보진영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은 한미FTA 주동자 김현종씨를 삼고초려해서 영입한 대목이다. 그런데 김 대표는 한술 더 떠 "김현종 같은 사람이 많이 들어와야 더민주의 이미지가 바뀔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맹신자들이 더민주의 미래라고 선언한 것이다.
민주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노조는 근로자 권익을 위해서만 활동해야 한다며, 노조가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활동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야당 대표가 재벌 대기업의 횡포를 강하게 비판하지 않고,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된 노동자들의 정당한 사회활동을 비난한 것이다.
김 대표는 지금 몸은 잠시 야당에 와 있지만, 사고방식은 뼛속 깊이 보수 여당이라는 건 이미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았다.
김종인 대표, 야당 기둥뿌리 뽑을 정당성 없다
그런데 김 대표는 제1야당의 정체성을 뿌리째 뽑아도 상관없는 분인가. 과연 그런 자격이 있는 분일까. 김 대표는 당원이 뽑은 대표가 아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데려와서 임시로 권한을 맡겨놓은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이다. 민주적 정당성이 매우 미약한 대표이다.
따라서 이번 비례대표 사태는 김 대표만의 잘못이나 책임이 결코 아니다. 김 대표를 삼고초려까지 해서 영입하고, 공천 전권을 행사도록 비상대권을 쥐어준 당사자는 문재인 전 대표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문 전 대표가 오늘의 사태에 가장 큰 책임자이다.
그런데도 문 전 대표는 김 대표가 제1야당을 노골적으로 보수우경화로 끌고가고 있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문 전 대표는 제1야당을 보수주의자들에게 헌납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 책임만으로도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실로 엄중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의 기둥뿌리가 뽑혀 나가든 말든 총선 결과만 좋으면 되고, 총선 이후 다시 등판해서 당을 장악하고 대선주자로 재기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착각도 유분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지금 더민주의 돌아가는 꼴을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한다면, 야당의 대선주자로서 자격이 없다.
'차르 대표' 앞에 납작 엎드린 것이든, 김 대표가 실패할 경우 자신의 정치적 위상이 추락할 것을 걱정한 것이든, 지극히 정략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