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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을 회수할 수 없듯이 중상모략도…"

[신년 특별기고] 재미 유명 시인-작가 이명산 '수필 6편'

이명산 시인 | 기사입력 2009/01/06 [16:59]
▲ 이명산   시인  ©브레이크뉴스
시인이자 작가인 이명산은 미국에 거주한다. 그는 새해를 맞아 본지에 삶의 철학이 담긴 수필 6편을 보내왔다. 다음은 그의 수필들이다.<편집자 주>
 
닭털베개
 
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짓은 남을 중상모략 하는 일이다. 성경 십계명에서는 살인만큼이나 중한 범죄로 취급하고 있다. [거짓 증거 하지 말라 - you shall not bear false witness. 마태복음 19:18] 남을 실력으로 대결할 수 없을 때, 시기 질투심으로 그런 비겁한 짓을 하게 된다. 아무리 결백이 입증된다 해도 일단 피해를 본 사람의 상처는 영원히 가시지 않는다. 특히 친한 친구로부터 받은 배신은 그 상처가 너무 크다. 평생을 형제처럼 친하게 사귀던 두 사람이 있었다. 어떤 이권이 개입된 사건에서 상대방을 해치기 위하여 한 친구가 중상모략을 했고 그 중상모략을 받은 친구는 크게 실패하여 재기불능의 어려움을 당했다. 그런 상태로 세월이 흐르고 피해자는 병이 들어 병상에 눕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친구는 깊이 참회하고 병상의 친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병상의 친구가 말했다.
 
“이 보게 친구! 바로 앉게. 다 지나간 일이야. 살다보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야. 중요한 것은 우리 사이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다 해도 우리는 영원한 친구야. 나는 이제 곧 떠나야 할 것 같네. 내가 죽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으니 들어주게.”
 
찾아간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무슨 부탁이고 다 들어주마고 했다. 병상의 친구가 말했다.
“오늘 백화점에 가서 닭털베개를 하나 사다주게.”
 
찾아간 친구는 두말하지 않고 닭털베개를 하나 사가지고 왔다.
 
“오늘밤 어두울 때 자네는 이 베개속의 닭털을 꺼내서 마을 골목과 큰 길과 담벼락 사이에 고루고루 뿌리고 오게.”
 
찾아간 친구는 무조건 시키는 대로 시행하고 돌아왔다. 병상의 친구가 또 말했다.
 
“수고했네. 내일 밤엔 이 베개를 들고 나가서 자네가 버린 닭털을 모두 회수해오게.”
찾아간 친구는 참으로 난감 했으나 시키는 대로 했고 다음날밤 빈 베개를 들고 와서 “닭털이 모두 바람에 날아갔고 하나도 회수가 안 되니 이를 어쩌나” 라고 했다. 병상의 친구는 참회하는 친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자네가 나를 찾아준 것 참으로 고맙네. 그러나 자네 입을 떠난 나에 대한 명예훼손은 영원히 회수가 안 되니 그게 문제야!”
 
음치(音癡) 성가대원
 
나의 미국 이민생활 초기, 나의 딸이 philadelphia에 있는 university of pennsylvania (약자로 u. penn) 에 재학했다. 딸을 만나러 필라델피아에 가서 주말을 보내게 되면 그곳에 있는 한인연합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초교파 교회였다. 필라델피아에는 유명한 음악학교가 있어 그곳에 유학 온 한국학생들이 많이 이교회의 성가대원으로 활약했고 성가대 지휘자도 교포로서 음대 교수였다. 성가대원의 수가 정확하게 백 명 이었고 당시 미국 전국의 한인교회에서 가장 훌륭한 성가대로 이름이 나있었다.
 
나의 딸이 이 성가대의 피아노 반주를 했는데 언젠가 그로부터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보겠다. 성가대원 가운데 테너파트의 한 청년이 음치였다. 그가 이따금 이상한 괴성(怪聲)을 내어 화음이 깨지고 듣는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참다 참다 못하여 성가대원 몇 사람이 지휘자에게 그 청년을 내보내자고 건의를 했으나 번번이 묵살했다. 하루는 마침 그 청년이 불참한 자리에서 성가대원 전원이 정식으로 지휘자에게 그 청년을 내보내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때, 지휘자는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그 아름답고 청아한 목소리로 성가를 부를 때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할지 모르나 반드시 하나님의 귀를 즐겁게 한다는 보증은 없습니다. 정말로 당신들은 신명을 다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고 자신합니까? 나는 이 청년이 충혈 된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성가를 부르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가 가끔 음정은 틀릴지라도 그 애절하고 영혼을 불태워 하나님께 부르짖는 <괴성>을 들을 때에 나의 가슴이 뭉클하였고 그런 때에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당신들 99명의 노래보다 이 음치 한사람의 노래에 더 귀를 기우리실 지도 모릅니다. 그 청년에게 주의를 주겠습니다. 그러나 내보낼 수는 없습니다. 정 그렇게 해야 한다면 나도 사표를 내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원 전원이 숙연히 고개를 숙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목수
 
나의 아버지는 목수였다. 내가 어렸을 때 받은 교훈으로 평생 나의 삶에 지침이 된 하나의 예화가 있다. 충청도 시골 어느 부호의 저택을 짓는데 아버지가 도편수로 일을 하시다가 어느 날 큰 변이 생겼다. 같이 일하던 목수 한사람이 실수로 대청 중간에 세울 가장 비싸고 중요한 기둥을 한자가 모자라게 톱으로 잘라 버렸다.
 
집주인이 노발대발 하면서 “이 기둥은 내가 안면도에까지 가서 쌀 열 가마 값을 주고 사온 재목이요. 당장 변상 하시오” 라고 했다.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아버지는 몹시 낙담했으나 아주 침착하게 변상을 하겠다고 말씀 하셨다. 이틀이 지났다. 아버지는 고민하면서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쓰레기덤에 버려진 큰 나무 등걸 하나를 발견 하셨다.
 
직경이 그 문제의 기둥보다 컸다. 밤에 몰래 그 나무 등걸을 기거하시는 방으로 가져가셨다. 그리고 이틀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 출입을 하지 않으셨다. 마을사람들이 걱정을 하며 아버지가 고민 끝에 크게 병이 나신 것으로 오해를 했다. 그동안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셨는가. 그 나무 등걸을 정확하게 한자 길이로 자르고 끌로 정교하게 용트림을 조각하셨다.

사흘째 되는 날 아버지는 그 용트림을 들고 방에서 나오시어 한자가 짧게 잘린 그 문제의 기둥을 대청 복판에 세우시고 그 밑에 한자 높이의 용트림을 받침으로 괴었다. 민둥민둥한 기둥보다 몇 배나 더 멋있는 예술 작품이 되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집주인과 마을사람들이 환호성을 울렸다.
 
집주인은 너무 기뻐서 술과 떡과 고기로 잔치를 베풀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이 꼬이고 실수를 했을 때 우리는 침착하게 그 어려움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실망과 포기는 약자의 변명이다.
 
따끈한 커피 한잔
 
그가 비록 공산주의국가의 수상을 지냈지만 중국의 주은래는 자국뿐만 아니라 서방세계에서도 존경을 받은 정치가였다. 그가 청년시절에 프랑스 파리에서 고학을 할 때 너무 가난하여 책을 살 수도 없었고 밥을 굶기가 예사였다. 아주 추운 날 아침에 신문배달을 하다가 어느 집 문밖에서 쓰레기통을 뒤졌다. 먹다버린 빵 조각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마침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던 집주인 마님이 그 광경을 보았다.
 
주은래는 고개를 숙이고 “죄송합니다, 마님, 혹시 빵 조각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라고 했다. 그리고 황급히 떠나려고 하는 이 동양청년을 불러 세우고 그 주인마님이 대화를 했다.

“저는 중국에서 온 고학생입니다.”
“날씨가 아주 찬데 잠간 나를 따라 들어오게.”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가 응접실에 안내되고 불이 잘 타고 있는 벽난로 앞 의자에 앉았다. 마님이 잠시 후에 따끈한 커피 한잔과 버터와 잼을 바른 토스트 두 장을 들고 나와 이 고학생을 대접했다. 그리고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고생을 잘 참고 견디어 부디 성공하게!”
 
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주은래가 중국의 수상이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아프리카에 외교행차 할 때 파리를 경유하면서 수행원들을 시켜 그 집을 찾았다. 그때 그 마님이 아직도 생존해 같은 집에서 초라하게 독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은래가 밤에 은밀히 그 집을 찾아가 마님을 만났으나 마님은 자기를 기억도 하고 있지 않았다.
 
“제가 옛날에 이집 쓰레기통을 뒤지던 고학생이었습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그리고 주은래는 가방에서 신문지에 싸인 조그마한 선물을 꺼내어 마님에게 전했다.
“이게 무엇인가?”
 
“그때 저에게 주신 따끈한 커피 한잔 값입니다.”
 
“그런 일을 아직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나?”
 
주은래가 떠난 후에 마님이 신문지에 싸인 물건을 열어보았다. 벽돌만한 순금덩어리 두 개가 들어있었다.
 
기우 (杞憂)
 
우리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 기우(杞憂)라고 한다. <기>나라의 <근심>이란 뜻이다. 중국의 周代에 杞라고 하는 조그마한 왕국이 있었다. 나라가 태평하여 근심할일이 없었다고 한다. 왕은 어질고 백성을 사랑했으며 백성은 순하고 근면하며 왕에게 충성을 다했다. 세상에 근심할일이 하나도 없으니까 <저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나>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고 해서 杞憂라는 단어가 생겼다. 그 나라의 왕이 얼마나 어진 임금이었는지를 말해주는 하나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서 왕이 연회를 베풀고 신하들과 나라의 유공자들을 초대했다. 술과 안주가 풍성했고 일배 일배 부일배(一杯一杯 復一杯)하여 모두 거나하게 취했을 때 갑자기 어디서 일진광풍이 불어와 연회석의 등불이 모두 꺼져 캄캄하게 되었다. 그때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취객 중에 한사람이 젊고 아리따운 왕비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깜짝 놀란 왕비가 그 사람의 갓끈을 낚아채고 말했다.
 
“빨리 불을 밝혀라, 어떤 무례한자가 나의 손목을 잡았다. 내가 그자의 갓끈을 손에 쥐고 있느니라.”
 
이 말을 들은 왕이 급히 호통을 쳤다.
 
“여봐라! 누구든지 나의 허락이 없이 불을 밝히는 자는 엄벌을 받으리라. 이제 이 자리에서 누구나 막론하고 갓을 쓰고 있는 사람은 즉시 자기의 갓끈을 떼어서 버려라. 다 그대로 시행했느냐? 그래, 이젠 불을 밝혀도 좋다.”
 
불이 밝혀졌다. 왕비의 손에는 까만 갓끈이 하나 쥐어져 있었으나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다음날 밤에 신하 한사람이 은밀히 왕을 배알하고 고백했다.
“전하, 제가 범인입니다. 엄벌을 내려주소서.”
 
 
왕이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경은 참으로 멋있는 사람이야. 나라도 취중에 그런 짓을 한번 해보고 싶었을 거야. 그런데 부탁이네, 이 일은 경과 나만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발설하지 말게. 경이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니고 취중에 일어난 실수를 따져서 내가 아끼는 신하를 벌하거나 망신을 줄 수가 없네. 언젠가 날을 잡아서 우리 또 술 한 잔 하세.”
 
겸손한 간디
 
간디의 본명은 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이다. 역사가들은 그를 20세기 <비폭력의 선지자>라고 부른다. 그가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이며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그를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라고 불렀다. 마하트마(mahatma)는 범어(sanskrit)에서 대성(大聖) 이란 뜻이다.
 
19세 때 런던에서 법률 공부를 하여 변호사가 되었고, 1893년에는 남아프리카 내탈(natal) 주에서 그 나라에 사는 인도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대우에 항거하여 투쟁했다. 이때부터 그는 무저항주의자로 이름이 세계에 알려졌고 1914년 그가 인도에 귀국했을 때에는 영웅적 존재로 지지를 받았으며 그의 불타는 애국심과 웅변술은 민족지도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그의 대영제국을 상대로 하는 투쟁은 참으로 험난하였고 세 차례나 영국관헌에 의해 투옥되었으며 (1922-1924, 1930-1931, 1932-1933), 평생을 인도의 독립을 위해 싸워서 드디어 1947년에 인도가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인도의 독립은 간디가 바라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가 비운의 종말을 맞이하는 정치적 소용돌이를 불러왔다.
1945년 영국 노동당의 승리를 계기로 영국과 인도와의 관계가 획기적으로 발전하였다. 향후 2년간 인도의 독립을 위한 활발한 작업이 진행되었으나 회교분리주의자들의 거센 반발로 인도의 독립은 결국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는 결과가 되었다. 그 와중에서 회교분리주의자들과 힌두교도 사이의 갈등은 폭력충돌로 변하였으며 이 두 세력의 갈등을 잠재우고 조정하려고 동분서주하던 간디가 1948년 1월 30일에 힌두교 광신자 청년 한사람에 의해 암살되었다.
 
그 간디가 남아프리카에서 투옥되어있을 때의 일이다. 형무소 간수가 그를 존경하여 간디가 들어있는 감방의 변소청소와 의복세탁을 다른 재소자에게 시켰으나, 간디는 끝까지 거절하고 스스로 궂은일을 다 하였다고 한다.
 
인도의 독립을 협의하기 위해 그가 런던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가 누구를 만나러 기차역에 나갔다가 기다리던 사람은 만나지 못했고, 어떤 젊은 신사가 그에게 접근하여 자기의 가방 하나를 택시 타는 곳 까지 들어다 달라고 했다.
 
간디의 외모나 옷차림으로 보아 기차역에서 일하는 잡역부로 생각했을 것이다. 간디는 거절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짐을 옮겨다주고 팁을 받았다. 그날 오후에 그는 영국수상을 만났고 저녁에는 영국수상이 그를 런던의 최고급식당에 초대하여 국빈대우의 만찬을 베풀었다. 웨이터 한사람이 음식을 나르다가 간디를 바라보고 기겁을 했다. 그가 낮에 기차역에서 만났던 잡역부였기 때문이었다.
 
**필자소개/충남 부여 생. 재미 교포. 국무성 동아세아문제 전 수석연구원. 주한 미국대사관 전 정무관 (政務官). 시집으로는 <미운 당신에게 장미 열 송이를> <별이 보이는 작은 창(窓)가에> 수상록 <positive life> 등이 있다. 성경연구로는 <구원에 대한 이해와 성서적 고찰>이 있으며, 논문집으로는 <민족의 고난>이 있다. 저서로는 한국학생을 위한 <현대미국 회화영어> 교재 18권과 영어 교사들을 위한 종합참고서 <honing your english>등이 있다. 현재는 칼럼니스트(잡지 민족정론, 월간조선 -인터넷신문 breaknews, natizen)로 활동 중이며, 미국 알라스카 실버 아케데미(alaska silver academy)의 주임교수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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