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농업을 모티브로 했고, 인간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노동을 주제로 한 삶의 모습이다. 그림 속에는 열띤 마음을 가라앉히는 신비로운 힘이 있고, 세상 판에 휘몰리지 않고 고요히 살아가는 인간 본래의 모습이 있다.
1970년대 말까지 이모작 형태로 농사를 짓던 우리나라도 보리타작이나 벼 베기가 끝나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소쿠리를 옆에 끼고 이삭줍기에 나섰다. 특히 학교에서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특활시간이나 체육시간에 들판으로 나가 이삭을 줍게 했다. 비록 작은 이삭이지만 아금받게 주워 담던 근검절약의 습관 때문일까. 우리 경제가 발전하면서 밀레의 그림 같은 벼 이삭줍기는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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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가 되면서 벼농사의 가을걷이는 콤바인이라는 기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쉽고 빠르게 처리하여 이삭이 떨어질 리도 없다. 대신 이삭줍기도 시대와 지역과 계절에 따라 달라졌다. 이즈음엔 고구마나 감자, 인삼이나 황기, 더덕과 도라지 같은 밭작물을 캐고 나면 이삭줍기를 한다.
트랙터를 이용해 쟁기질을 하는 통 큰 이삭 꾼이 있는가 하면 쇠스랑이나 호미를 든 사람, 그냥 밭 옆을 지나다가 발로 툭툭 차며 줍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입에 풀칠이 목적이 아니라 건강을 돌보며 운동도 할 겸 이삭 줍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는 사람이 더 많다.
하긴 옛날 자린고비 알부자들은 자신의 논밭뿐이 아니라 남의 논밭과 논두렁 농로까지 단작스런 눈을 부라리며 이삭을 다 주워 갔다. 가득차면 이우는 것이 자연의 이치건만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다리 밑에 거적을 친 거지들도 피죽이라도 끓일 요량으로 옹송그리고 주인의 눈치를 보며 논바닥을 뒤지곤 하였으니, 참새나 까치 등 야생조류의 겨우살이 먹이마저 부족하였지 싶다.
추수할 때는 자기 밭이라고 네 귀퉁이까지 다 추수하여서는 안 되며, 추수하다가 단을 떨어트리거든 줍지 말라던 성경 구절이 새롭다.
씨는 세알씩 뿌리는 법. 한 알은 날짐승이 먹어야 하고, 또 한 알은 길짐승이 먹어야 하며 남은 한 알은 우리가 먹어야 한다던 옛 어른들의 혜안에도 무릎을 친다.
신문을 펼치니 ‘쓰레기에서 이삭 줍는 사람들’이란 기사가 대문짝만하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흐른다.’
이 아름다운 시로 유명한 센강 유역의 부유층 밀집지역 슈퍼마켓에는 매일 아침 9시만 되면 쓰레기 사냥꾼이 모여든단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선별해 대형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면,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식료품과 야채를 골라 장바구니에 담는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선 이들을 밀레의 대표작 ‘이삭 줍는 여인들’에서 따온 표현으로 ‘이삭 줍는 사람’으로 점잖게 부른단다.
프랑스의 빈민구제 담당관이 한 인터뷰에서 “이삭 줍는 사람들이 프랑스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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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유명화가 밀레가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 언죽번죽 이삭줍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문화의 차이일까. 예술의 강국인 그들의 비극적 아이러니에 묘한 아우라가 스친다.
프랑스에서는 시인들이 매년 봄마다 영혼의 병을 쫓아내는 퇴마사 역할을 맡는다지만, 육신이 있는 한 인간은 어쩌면 영원한 원시인일지도 모른다. 장보러 갈 때도 정장을 입는다는 그들이지만 지금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유토피아는 한낱 사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남의 일 같지 않아 버선 수눅 방향을 바꿔 신은 것처럼 편치가 않다. 우리라고 이 불황속에서 너도나도 쓰레기장에서 이삭 줍지 말라는 법 없으니까. 가장 가까이서 보는 내 친척이나 이웃들은 아직까지는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하다지만, 이 풀이 언제 슬픈 눈초리처럼 축 처져 마뜩찮을지 모를 일이다.
성경 말씀처럼 가진 자가 귀퉁이를 남겨야 할 때다. 부자는 빈자를 위해, 지식인은 못 배운 자를 위해, 권력자는 민초를 위해, 건강한 사람은 병약한 사람을 위해 네 귀퉁이를 다 추수하지는 말아야 하리. 작은 귀퉁이 하나씩으로 사랑의 등불을 켠다면 적어도 내 부모형제가 쓰레기장에서 이삭 줍는 일은 없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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