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한민족사의 시원인 환국, 배달, 조선(고조선은 국명 오류), 북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발해), 고려 등의 국통에 대한 고증과 지리지명 위치관련 공유드리고자 한다. 향후 지속적 미래 국가발전을 위해 "국통・국혼이 바로선 대한민국" 건설기반 조성을 목표로 추구한다. 조선사편수회 역사주권 상실의 100주년 시기에 환국배달조선 역사광복론(2025)을 바탕으로 지나왕조들의 지명이동·역사왜곡, 한반도조선의 유명조선 사대사관과 일제강점기 일속조선 식민사관을 넘어서서 동이한민족사 역사광복의 첫걸음으로 시작한다.
![]() © 임기추 박사 |
삼위태백의 국통・국혼 유래와 시원
국통・국혼 및 역사와 관련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13세기에 편찬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이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열제 때 승려 일연(1206-1289)이 1281년에 편찬한 사서로, 『삼국사』에서 제외된 배달・조선 건국을 기록하여 동이한민족 역사(동국사/삼국사)의 시원부분을 보완하였다(정영훈, 2013).
『삼국유사』 「(고)조선기」에서 [위서]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평양성(지나 산서성 임분시)에 도읍하고 조선을 개국하여 2,096년간 다스렸다. 이후에 백악산(산서성 관잠산, 분원천지, 압록수 발원) 아사달(산서성 태원시)로 천도한 후 1,500년간 통치하였다(김태영, 단군조선, 2022, 100-101). 44대 구물단군은 대홍수로 인해 장당경인 평양성으로 환도하였다(김태영, 환단고기, 2023, 35-39).
[고기]에 따르면, “옛적 환국이 있었고, 서자부의 환웅이 존재하였다. 그는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數意天下) 인간 세계를 탐냈다(貪求人世). 이를 알게 된 환인은 삼위태백(지나 감숙성 삼위산[돈황시 남쪽]과 흑수[태백산]; 김태영, 환단고기, 2023, 18)을 내려다보았고(下視三危太伯),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라고 판단하였다(弘益人間). [중략] 이에 풍백・우사・운사(입법・행정・사법관)를 비롯해 주곡・주명・주병・주형・주선악(정부부처)을 거느리고 통치하였으며(이강식, 1993; 신용하, 1999), 360여사를 통해 재세이화(在世理化)하였다.”
이와 같은 국통・국혼 유래와 시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원전 문헌의 611종, 즉 『사고전서』 79,337권을 비롯해 『25사』 4,022권, 『조선왕조실록』 1,893권, 『고려사』 139권, 『삼국사』 50권, 『삼국유사』 5권 등의 총 85,446권(김태영, 환단고기, 2023, 6)과 석・박사 논문과 중국고금・중국고대・중국역사지명대사전 등에서 조사・검토・비교・분석・교차확인한 이후에 새로운 학설이 제시되었다(김태영, 단군조선, 2022, 107-110).
삼국유사 (고)조선기 전문 해석
[위서]에 이르되,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니 요임금과 같은 때(與高同時)이다. [고기]에 이르되, ① 옛날에 환국(昔有桓國)에 서자부 대인 환웅이 있었는데,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數意天下) 사람이 사는 세상을 탐냈다(貪求人世). 아버지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들을 널리 이롭게(弘益人間) 해 줄만했다. 이에 천부인 3개를 주어, 가서 그것을 다스리도록 하였다(遣往理之).
② 환웅이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에 있는 신단수 밑에 내려오니, 이곳을 신시라 하고 이 분을 환웅 천왕이라 부른다. 풍백・우사・운사와 주곡・주명・주병・주형・주선악 등을 거느리고 인간세상의 360여 가지 업무를 주관하면서 세상에 머물며 다스리었다(在世理化). ③ 이 때 웅족과 호족이 같은 굴 속에서 살면서 항상 신웅(神雄)에게 빌어 사람[도통, 성통]이 되기를 원하였다(願化爲人).
이에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이르되,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될 것’이라 하였다. 웅족과 호족은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러나 웅족은 3・7일을 기( 忌)하여 여자의 몸을 얻었지만, 호족은 기하지 못한 까닭에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였다. 이 웅녀는 혼인할 데가 없어서 신단수 밑에서 아기 배기를 빌었다. 이에 환웅이 잠깐 사람으로 변하여[도통, 성통]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④ 요임금이 즉위한 50년 경인(당요가 즉위한 원년은 무진년이므로 당요 50년은 정사이지 경인이 아니니 그것이 의심됨) 평양성에 도읍하고 조선을 처음 일컬었다. 다시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으니 궁홀산이라고도 하고 지금의 금미달이다.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고, 주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자,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로 다시 돌아와 은둔하여 산신이 되었으니, 수가 1,908세이다(정영훈, 2013. 필자가 일부 수정).
삼위태백의 홍익인간 시원지관련 교차확인
『흠정서역동문지』(1763, 건륭 28년, 사고전서) 4권 「천산남북로산명(天山南北路山名)」에서는 삼위산의 위치와 삼위산이 곧 천산(天山)이며, 이를 백산(白山)이라고도 한다는 사실을 『산해경』, 『대명일통지』, 『중국고금지명대사전』, 『수경주』 등의 고서를 인용하여 기록했다(율곤학회, 2013).
“古天山 東盡境(山海經) 三危山 西三百五十里 曰 天山 漢書 西域傳 西域 南北有大山 通典 始自張掖 而西至于 庭州 山皆周遍一統志 天山一名白山自哈密東北境綿亘而西 …; 고천산 동진경(산해경) 삼위산 서삼백오십리 왈 천산 한서 서역전 서역 남북유대산 통전 시자장액 이서지우 정주 산개주편일통지 천산일명백산자합밀동북경면긍이서 …”라는 기록에서, 천산은 『동진경(산해경)』에 따르면 삼위산 서쪽 350리에 있으며, 『한서』 「서역전」에서는 서역의 남북으로 걸쳐 있는 큰 산으로 서술되어 있다. 또한 『통전』에서는 장액의 서쪽에 위치하며, 모든 산들이 천산의 위용 아래 놓여있다고 기록했다. 『일통지』에서는 천산을 일명 백산이라고 하며, 합밀(투루판) 동북 끝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고 전했다.
흑수는 천산에서 발원하여 사막지역을 지나 감숙성 돈황과 삼위산에 이르며, 이후에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약수와 합류한 후 사천성을 지나 남해 바다까지 흘러간다. 이후에 시간이 흘러 단군시대가 되면서 흑수는 더 내륙 쪽으로 이동했다(『중국고금지명대사전』 991면, 黑水書禹貢 華陽黑水惟梁州 黑水西河惟雍州 導黑水至于三危入于海 …; 흑수서우공 화양흑수유양주 흑수서하유옹주 도흑수지우삼위입우해 …).
『사기』 1권 사마천 찬(史記卷一司馬遷撰本文) 본문 35면에서는 “括地志云, 三危山 有峰故曰三危俗亦名卑羽山 在沙州燉煌縣東南三十里 …; 괄지지운, 삼위산 유봉고왈삼위속역명비우산 재사주돈황현동남삼십리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괄지지』에서는 삼위산이 비우산의 옛 이름으로, 사주 돈황현 동남 30리에 위치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삼위산은 태백산(太白山)으로도 불린다. 『좌전(左傳)』의 주석에서는 삼위산(三危山)이 과주(瓜州), 즉 현재의 돈황(燉煌) 남쪽 당하(黨河) 근처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수경주(水經注)』에서도 마찬가지로 삼위산이 돈황현 남쪽에 위치한다고 기록했다(율곤학회, 2013).
장차 삼위태백의 국통과 국혼을 찾아내기 바라면서 지나의 주・명・청과 중화민국・중공 및 일본 등의 지속적인 역사왜곡과 역사침략을 극복하는 길은 유명조선(명의 속국 조선) 사대사관과 일속조선(일제식민지 조선) 식민사관을 넘어서서, 동이한민족사의 역사광복을 향한 실마리가 될 수가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이러한 동이한민족사적 역사광복을 향한 장도는 대한민국의 지속적 미래 국가발전을 위한 필수요건으로써의 원동력 및 성장동력으로 창신하게 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
* 필자/임기추 박사
홍익경영전략원 원장/유튜브 홍익나라 운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