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둘 여자 하나 셋이 너른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드는 데 마침 비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세 사람 사이에 우산은 둘 뿐, 펼쳐드는 순간 나만 홀로 우산이 없어 여자 우산 안에 끼어들어 어깨가 서로 닿은채 나란히 함께 걸었다. 야릇한 마음에 한 참 동안 고마웠다.
옛날 변소자리를 지나 뒤뜰에 이르니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고, 사람들이 많다. 주방 안에 여러 여인 바쁘다. 평소 힐끗 곁 눈질로 스쳐보고 느꼈던 ‘예쁘고 우아한 여인’이 거기 있지 않나. 이 자리에 있는 걸 보니 짐작했던 대로 음식 솜씨까지 대단한 ‘군계일학(群鷄一鶴)’임이 분명하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자 고개 숙여 꾸벅 인사하지 않는가. 반갑고 고마워 가슴이 콩다콩 그러나 미안하다. 한 우산 속 나란히 한 여성 때문에. 처음 일이라 당혹하며 ‘아! 나에게 마음이 있었구나.’ 서로 모른 체 했을 뿐 속내를 이제야 알았다.
비가 그치고 우산이 접혀지며 여인은 가버렸다. 이제껏 소극적이었던 서로의 맘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양인을 다 놓치고 말았다.
55년이 지났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보니 머리는 희끗희끗 너무 늙었다. ‘왜 꾸벅 인사했을까?’ 우산 속 여자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이 여인 그걸 평생 후회했을지 모른다. 난 왜 이다지도 소극적이고 못났더냐. ‘우아하고 어여쁜’ 그 마음 아프게 하고… 그 모습 한없이 그립구나.
2.
밖에서 집에 들며 출입구 왼편 우편함(郵便函)을 여니 5월 10일 동광중학교 개교 104주년 및 50회 졸업생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라는 반가운 초청장이 와 있다. 깨끗이 이발하고 예정된 시간에 도착했다. 짓궂은 친구는 여전해 ‘선생님!’하며 뛰어나와 꼭 끼어 안는 놈이 있다. 근력이 부족해 넘어질 번하니 예나 지금이나 눈치 빠른 춘섭(春燮)이가 얼른 잡는다.
술이 몇 잔 오고 가자 곧 스스러움 없어 별소리가 다 나온다.
“선생님! 학교 한 바퀴 돌아보시지요.”
“그래볼까.”
죽 늘어서서 학교 뒷마당에 갔다. 그 때 보던 나무며, 돌계단, 그 당시 교실이 있다. 조리실도 여전하다. 기억력 좋기로 이름난 춘섭이 또 먼저 입을 연다.
“선생 님! 야간 수업 때마다 늘 이 방에 불이 켜져 있던 것 아셔요?”
“그게 무슨 소리야”
“온정이(溫情伊) 선생님이 우리 야간 수업 끝날 때까지 있었어요.”
“그랬던가?”
“그 때 우리가 뭐라 한지 아세요?”
“뭔데…”
곁에 있던 방울이가 재빠르게 끼어들어 “그게 선생님 때문이라고 우리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강언덕(姜彦德)선생은 얼굴이 화끈하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 비친 얼굴을 보며 생각했던 바로 그 사실 때문이었다.
“온정이 그 선생님이라구”
시치미를 떼며 ‘어디 그랬을까’ 해 놓고는 사실들이 무척 궁금해진다.강언덕(姜彦德) 선생은. 춘섭이는 온정이 선생이 제 이모(姨母)라며 전화 번호고 무엇이고 다 물어 보라한다.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한다.
3.
춘섭와 방울이는 3년 내내 같은 책상에 나란히 앉은 친구라며 자랑한다. 동창 중 가장 친한 동창생이란다. 둘은 부지런하고 민첩하여 마음이 척척 맞는다.
“선생님 전화 받으세요.”
춘섭이가 전화기를 건너 주기에 귀에 대니
“강언덕 선생님! 저 온정이예요. 건강하셔서 반갑습니다.”
“…………”
얼른 대답이 아니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불쑥 내미는 전화기 타고 나와 들리는 어여쁘고 우아한 낮은 목소리에 놀라 아구통이 벌어지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몇 마디 예! 예! 주고받다 전화번호를 보니 <010-3535-2255>번이다. 춘섭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선생님! 시간만 내세요. 이모님께 연락 해 놓을게요.” 거의 명령조이다.
방울이는 “가실 땐 제가 모시렵니다.” 방울이는 상냥하고 부지런해 심부름을 척척 잘 했던 제자이다. 도시락 나르기, 시험 때 철판 얻어 오기… 일을 시킬수록 좋아하던 속칭 비서실장이었다. 그 기질 그대로 잘 키워 지금 광고회사 사장이란다.
5월 15일 아파트 앞에 에쿠스 고급차가 기다린다. 차에 오르자 방울이가 운전하고 춘섭이는 그 곁에 앉았다.
“지금 어디 가나?”
두 사람은 입을 모아 “강언덕에 갑니다.’
“무어 ‘강언덕’ 나 여기 있는데…”
세 사람은 깔깔깔 소리 내어 웃었다.
4.
차는 1시간 정도 달려 큰 길을 벗어나 내려서니 개울 둑길이다. 운전자 방울이가 “선생 님! 여기부터 강언덕 입니다.” 자꾸 농담을 보낸다.
“그렇기는 하다마는…”
내 따라 오르니 좌우 양측 둑에 키 큰 나무가 무성하다. 이런 풍광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무렵 차가 주차장에 멈췄다. 앞자리 춘섭이가 먼저 “선생님! 다 오셨습니다.” 재빨리 내려 뒷문을 열기에 발을 내밀어 땅을 밟는 순간 앗! 소스라치게 놀랐다. 맞는 이가 ‘온정이 선생님’ 아닌가? 한참 서로 바라만 본다. 보라색 옷차림이다.
50년 전 꾸벅 미소지으며 인사하던 그 때 그 옷 색깔이다. 안내하는 자리에 앉으니 춘섭과 방울이는 ‘좀 갈 데가 있다’며 둘만 남겨 두고 나가버린다. 정적 속에 마주 바라보는 순간이 한 참 흐른다.
“강언덕 선생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저는 어젯밤 한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강언덕 선생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선생님 모시고 온다는 춘섭 군 말을 듣고요.”
짐작이 가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 일은 춘섭이와 방울이가 꾸민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선생님! 이걸 한 잔 드시지요.”
건네주는 예쁜 은제 잔을 받아 목례하고 마시니 오래된 인삼주이다. 잔을 탁자에 놓으며
“저는 어떨까요. 한 잔 따르는 것이…” 아무런 대답이 없다. 잔을 채워 건네니 고맙다며 받아 마신다.
5.
“이게 약주(藥酒)이고 ‘합환주(合歡酒)’입니다.”
‘합환주?’ 망치로 머리를 치는 듯하다.
너무나 어마어마한 말이기 때문이다. 아니 처음이요 마지막 선언으로 들린다. 이야기가 풀리기 시작한다. 온정이 선생 말은 거슬러 올라간다. “부모님께서 시집가라 하시기에 혼인을 사양하며, 저를 진정 사랑하신다면 이 냇가 양편 땅을 달라고 했습니다. 망설이던 아버지는 그러라 하셨지요. 저는 그 순간 ‘이 땅과 결혼한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밤새워 이것저것 그리고 묵상 중에 결심했습니다. 잠깐 나가 보실까요. 여러 가지 상념 중에 무심코 넘기다가 <에스겔 47> ‘성전에서 나오는 물’ 편을 보았지요.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여기서 결심했습니다. 오실 때 보셨듯이 저 건너 ‘버드나무’는 선생님이십니다. 거기 보이는 정자 이름은 ‘계유정(溪柳亭)’… 강 선생님 아호를 붙인 선생님 거처입니다. 시냇가에 버드나무를 심어 곁에 모셨습니다. 가운데 이 시내가 ‘동광천(東光川)’ 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50년 전 ‘동광중학교’라 보시면 됩니다. 이 물가 양편은 강 언덕 바로 ‘강언덕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과 몸을 대고 사는 격이었지요. 이쪽 산수유는 바로 저 입니다. 아시다시피 전 남도 출신이기에 제 고장 산수유를 심었고 저기 건물이 ‘정이루(情伊樓)’인데 제 처소 제 몸을 상징합니다. 물 가운데 섬 집은 ‘온유각(溫柳閣)’, 제 성 ‘온(溫)’과 선생님 아호 첫 자 ‘유(柳)’를 붙였습니다. 밤에는 각각 자되 낮에는 함께 만나 지낸다는 뜻이 담긴 집이지요.”
6.
양탄자처럼 부드러운 잔디밭을 지나 ‘온유각’에 들어서니 밥상이 차려져 있다. 춘섭이와 방울에게 전화하니 얼른 달려 왔다. 넷이 마주하고 앉았다. 더덕구이, 오이장아찌, 자운영나물, 미나리 김치, 뽕잎 볶은 것, 새우젓…오곡 밥에 반주가 따른다. 반찬 맛이 입에 맞는 것이 아니라 입에 맞는 반찬만 빼다 놓았다. 심혼이 교류하지 않고는 이럴 수가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젊은이들은 차를 핑계 술을 사양하고 밥 한 그릇 게눈 감추 듯하고는 볼일 있다며 권하는 녹차도 사양한 채 나갔다. 담배 피우러 가는 기색은 아니고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해 주는 분위기였다.
“선생님! 저는 솔직히 선생님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랑을 고백하며 정을 보내기 전에 곧 혼인하시더군요. 전 며칠을 울었습니다. 우는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자꾸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선생님은 흠 없는 천사였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소극적인 제 자신이 미웠습니다. 결국 혼인을 하지 않기로 작심했지요. 아무리 잊으려 해도 아니 됩니다. 아니다. 영적 혼인을 하면 되지 이 마음으로 이 시설을 했습니다. 나무가 자랄수록 정이 깊어져 행복했습니다. 보고 싶으면 ‘계류정’에 들렸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으면 ‘온유각’에서 선생님 글 읽고 200자 원고지 한 장 분량 제 생각을 적어 뒤에 붙여 두었습니다.
외람스러운 말씀이오나 저는 선생님을 마음 속 깊이 ‘낭군(郎君)’으로 모시고 살아갑니다.
사모님께 미안한 말씀이오나…”
먼 하늘을 한참 바라보더니 “이 이야기 평생 처음이요, 마지막일 것입니다. 늙었기에 하는 고백이네요. 젊어선 말 한 마디 못 드렸고, 메모지 한 장 건네지 못했습니다. 반백 년 가슴에 담아 두었던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저 오늘 죽어도 이제 한이 없겠습니다.” 강물처럼 조용히 차분하게 이어 흐른다.
“혼인해 사는 주변 50대 친구들이 저더러 잘 했다 합니다. 얼굴이 화끈화끈한 갱년기란 말을 쓰기도 하던군요.” 몇 시간이 훌쩍 흘렀다. 춘섭과 방울이가 나타나 “좋은 시간 되셨습니까? 주무시고 가라 하실 온 선생님 아니시고, 오늘밤 쉬실 강 선생님 아니신 걸 저희들 잘 압니다. 이제 떠나시지요?”
7
집에 돌아온 강언덕 선생은 어제 겪은 충격에 병이 났다. 밥맛이 없다. 잠이 오지 않는다. 자다가 벌떡 일어선다. 무언가 중얼거린다. 골똘히 생각한다. 전화 소리에 민감하다. 바깥 바람 하루 쐬고 딴 사람이 됐다. 부인 백인성(白仁星) 사모 평생 살았으니 이상한 모습 얼른 알아차렸다. 강언덕 선생은 은근히 물어주기를 바랐다. 속이 터질 것 같다. 양인은 평생 속이는 부부가 아니라서 핸드폰 하나를 함께 쓰고 산다.
50년 전 이야기며 어제 일까지 한 점 빼고 보탬이 없이 털어 놓으니 속이 탁 틔어 숨이 제대로 쉬어진다. 부인은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부러운 일입니다.” 이게 전부이다.
부인 한참 머뭇거리다가 “당신과 평생 살아 알지만 온 선생 역시 사람 제대로 본 것 맞습니다. 그러나 복이야 날 뛰어넘지 못했군요. 듣고 보니 가엾네요. 동정심이 납니다. 어찌하렵니까. 책임져야 하지요.”
농담인지 비아냥거림인지 그 속을 모르겠다. 부인이 계속한다. “일단 아이들과 상의 합시다.《순애보》도 읽었고《춘향전》도 보았지만 여자가 무슨 죄입니까? 나 여자 입장에서 하는 말이니 꼭 유념하고 들으시오. 우리는 줄 것 주고, 갚을 건 갚아야 합니다.”
강언덕 선생은 부인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부인 말이 “나 당신 잘 압니다. 모두 알고 믿습니다. 나야 복이 있어 아들 3형제가 있지요. 과욕 부리면 아니 됩니다. 아들 하나 내줍시다.” “여보! 당신 미첬어!” “아니 제 말 들어 보시오. 만일 당신이 그 여자한테서 아들 낳아 왔으면 내 성미 기르기야 했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내 눈치 보며 평생 죄인이었을 터인데 당신 속 차려 난 지금 평안히 살지 않소?”
고맙다. 마음 씀씀이가 태평양이다.
8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자, 손녀, 4촌이 모여 가족회를 열었다. 백인성 부인이 말문을 열어 모인 이유를 대충 설명한다. 사위는 피식피식 웃고, 딸은 고개를 숙였으며, 며느리 셋은 흥미진진하게 듣는다. 옆에 있던 4촌이 “이 세상에 어디 그런 사람 있어요.” 하며 형을 의심한다. 3형제는 말이 없다. 손자들은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눈을 깜박인다.
침묵이 흐른다. 가운데 아들 ‘만달(萬達)’이가 제가 가겠다고 나선다. 아버지 어머니가 멍하고 있을 때, 그의 처 홍라(洪羅)는 “나는 어찌 됩니까? 시어머니가 둘” 놀라 묻기에, 한 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
어머니 말씀에 “난 니 아버지 하늘처럼 믿는다. 모두 진실이다.” 결국 둘째 말대로 온정이 선생께 주고 또 자청 가기로 확정이 났다. 식구들은 손바닥을 펴 ‘땅땅땅’ 탁자를 치고 일어섰다. <010-3535-2255>번 전화가 연결되고 이야기가 쉽게 풀려 받아드린단다. 여기 전화번호에도 사연이 있다. 가운데 번호 ‘3535’는 강언덕 선생을 사모하는 ‘사모사모’이고, 뒤의 ‘2255’는 기다림을 뜻하는 ‘이리오오’란다. 전화번호 하나에도 이런 지성이 담겨 있었으니 주는 아들 사양할 여인이 아닌 천사이다.
9
아들 주고 아들 맞는 날 행사 이름이 ‘합혼식(合魂式)’이다. 50년 전 학교에서 만났던 두 사람의 그리움이 온전하게 지켜지더니 80을 앞두고 고백하며 하나 되는 순결한 만남이다. 처절할 정도로 사무치는 정을 지닌 온정이 선생이야말로 세상 누구한테든 온당한 보상을 받아 마땅한 여인이다. 강언덕 선생이 보답을 해야 하지만 한계가 있다. 자기 육신은 너무 늙었고, 사회적 윤리 통념상 육체 운운 자체가 추한 이야기이다.
자기의 분신 둘째를 선뜻 줌은 기발한 발상 잘 한 일이다. 남편을 신뢰하는 백인성 사모의 아량과 덕성이 천하의 큰 거울이다. 이를 알게 된 동광중학교 50회 졸업생이 나섰다. 모교의 자랑이요, 현대판 남녀 스승의《순애보》라며 지방의회, 자치단체장, 교육감, 교육부를 움직이어 ‘합혼탑(合魂塔)’을 세운다. 동창회장 등 재간 있는 여러 사람이 나서서 제막을 하는 날 글 잘하는 제자 세심(細心)이는 ‘혼(魂)’자를 ‘혼(婚)’으로 보자며 축시를 읽었다. 법조인 제자 변호사는 ‘가족부’ 정리를 맡겠다며 달려 왔고, 법원 담당부서에서 입회 차 나왔다. 강언덕 온정이 두 선생은 만자(萬者) 앞에서 생전 처음 손을 잡아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오색 풍선이 하늘을 뒤덮었고, 천지를 울리는 교향악단의 합창 소리가 하늘 끝까지 울려 퍼졌다. 교육부장관은 치사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 국민의 혼이 합해지는 이 자리의 두 분 선생님을 우리나라 교육자의 ‘교혼(敎魂)’으로 삼자”고 호소했다.
10
강언덕 선생의 교수법은 속칭 ‘양(羊) 몰이 교육’이다. 앞에 가는 상위권을 의식하되 늘 ‘뒤처지는 자’를 살피며 따라 갔다. 남이 앉을 자리 남겨 놓았다. 많은 돈 필요 없어 지갑에 몇 만원이면 족했다. 좋은 글만 쓴다. 남이 내는 밥값 싼 걸 원한다. 주머니에 버스 요금 없으면 빌려 달라 못하고 그냥 걸어간다. ‘어? 1,000원도 없이 나오다니!’ 이런 허점을 보이기 싫어서다. 받은 대접은 빚으로 여겼다. 글 쓰고 원고료 이야기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인사이동(異動) 때 부탁한 일 없다. 공금에 10원도 손대지 않는다. 학력과 친구 자랑 절대 하지 않는다. 여자를 돌처럼 여겼다. ‘당신은 살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여자야!’ 이런 관점이다. 처제나 동생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여학생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준 적이 없다. 남녀유별(男女有別)이 보편적 여성관이다. 여자와 단 둘이 마주 앉아본 적이 없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 몸에 배어 있다. 내리며 버스비 주던 시절에 문 가까이 섰다가 남의 차비 내던 남자다. 소 사주고 풀 베다 주는 성미였다.
편지 붓으로 썼고, 받은 봉투 가위로 베어 꺼내 읽는 성미이다. 친한 친구 죽어 호상(護喪) 서겠다는 말 못하고 돌아와 후회하는 유약한 사내이다. 여럿이 먹는 밥상에서 수저 먼저 들지 않는다. 남들 술 많이 사주었다. 지화(紙貨)는 반드시 깨끗한 돈부터 쓴다. 온정이 선생은 강 선생을 쉽게 설명한다. 지자(知者)는 요수(樂水)요, 인자(仁者)는 요산(樂山)인데 지자는 ‘동(動)’하고, 인자은 ‘정(靜)’이다. 강언덕 선생은 인품이 ‘산’이며 ‘정’이란다. 이 점이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이다.
11.
온정이 선생 이야기는 더 계속 된다. 읽어 본《논어》《맹자》속 공자 맹자 닮은 점이 있더란다. 《성경》속의 파울이더란다. 백장 스님이고, 전래 고전의 콩쥐이며, 머리 잘라 남편 친구 대접한 그 여인이고, 조선 초기 유관 정승이며, 무소유 법정 스님이시더란다. 사심도 욕심도 없는 청초한 인성, 한 평생 함께 할만한 분인데 이미 가버린 남자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어 지켜보며 수절(?) 한 것이란다. 하늘의 해 물론 좋지만 가까이 가면 아니 되듯 멀리서 보며 살기로 결심하고 이 자리에 ‘온유동(溫柳洞)’을 세웠다는 것이다.
육신! 이것 썩으면 소용없는 것, 육체의 만족은 오히려 추하며 거추장스러우니 오로지 ‘혼(魂)’을 지니는 게 낙(樂)이었단다. 온정이 선생의 신실한 고백이다.
12.
온정이 선생은 무척 세심하다. 강언덕 선생 호 ‘계유정(溪柳亭)’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성경 시편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 나무를 버드나무로 생각한다. 버드나무 가지는 아래로 처져 있어 바로 겸손함이다. 버들은 잎이 일찍 피고 늦게 지는 나무로되 상록수가 아닌 끝맺음이 있는 나무라서 좋단다. 버드나무는 수꽃과 암꽃이 확연하여 고귀한 교훈을 지녔다고 본다. 어머니 돌아가시면 버드나무 상장(喪杖)을 짚는데 이는 자애란다. 장군들 마실 물에 버들 잎 띄운 이야기가 많다. 한국인의 인성인 애정, 지혜, 끈기, 겸손, 고상, 분별, 무성함이 함축되어 있는 나무이다.
샘에서 시작한 물이-개천-시내-강-하(河)를 이루고 바다를 향하는데 엎드려 낮은 곳으로만 흐르니 이도 최고의 순리 겸손으로 본다. 갈수록 불어나 바다에 모인 물들은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 평등이란다. 정자는 마을 안 고대광실과 달리 들에 있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모두의 집이다. 온정이 선생은 강언덕 선생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단다. 사모하는 그 인성 못 잊어 이 언덕에 담아보자는 것이었단다. ‘온유동’은 인간의 고상한 인격이 숨 쉬는 곳이다. ‘에덴 동산’에선 사람이 쫓겨났지만 ‘온유동’은 기다리는 사람이 오는 마을이란다. 기다리던 사람 바로 강언덕 선생이 급기야 오고 말았다. 온 선생은 아들 만달과 나란히 언덕을 거닐며 “너는 어찌 니 아버지만 그렇게 꼭 빼다 닮았느냐?” 등을 툭툭 치며 손을 꼭 잡는다. 아들은 아버지의 분신이다. 이 손은 바로 사모하는 강언덕 선생 손임에 틀림이 없다.
강언덕 선생은 온정이 선생 보기를 공자 님 성품처럼 溫而厲(온순한 가운데 엄숙하며) 威而不猛(위엄이 있되 사납지 아니하고) 恭而安(경건 하되 자연스럽다)으로 본다.
esc2691@naver.com
*필자/이승철. 국사편찬위 史料조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