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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노병’ 서 후보는 이번에 7선 고지에 올라 여당 내 정몽준 의원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언론인 출신인 그는 경기화성 갑에서 62.7%의 득표율로 민주당 오일용 후보를 33.5%P차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당초 예상했던 20%P를 훨씬 넘는 큰 표 차를 기록했다.
한나라당-친박연대 대표, 새누리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던 그의 복귀는 국정원 정쟁에 비켜선 침묵행보에 정치적 부담을 안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 어떤 의미일까. 우선 무게를 더는 단초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는 당·정·청-대야·언론관계에 ‘멀티 플레이어, 리베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탓이다. 당선소감에서 그가 “제 경험, 경험을 동원해 박근혜 정부의 울타리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한 것에서도 유추된다.
특히 박 대통령은 여당관리 및 영향력 행사 등에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다. 새누리당 역시 정국주도권을 재 확보한 동시에 남은 주요 과제입법화에 박차를 가할 계기를 득했다. 박 대통령 사람인 그가 복귀하면서 김무성 의원 중심의 당내 권력지형도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그는 후보공천 때부터 정가에서 청와대의 측면지원 얘기가 흘러나왔다. 청와대가 나름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까지 그의 여의도 귀환을 기대한 건 왜일까? 단순히 김기춘 비서실장(청와대)-서청원(새누리당)-홍사덕(민화협 대표상임의장) 3각 이너라인(Inner line) 구축에 국한된 게 아니다.
그는 박 대통령 당선에 사실상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박 대통령은 이번에 그에게 나름의 ‘보은(?)’을 하게 돼 마음의 부담 하나를 던 격이다. 두 사람은 오랜 인연을 공유하고 있다. 지난 2007한나라당 대선후보경선에서 그는 박 대통령 캠프에 뒤늦게 합류했으나 특유의 친화력으로 전국적 조직 확대에 앞장섰다.
이 때문에 그는 지난 2008총선에서 친이계의 소위 ‘친박공천학살’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 후 그는 ‘친박연대’를 만들었으나 처음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친박연대는 전국적 돌풍을 일으키며 정당투표 지지율 3위로 비례대표 8석, 지역구 6석 등 14석의 의석을 얻었다.
이후 친박연대는 미래희망연대로 당명개정 후 18대 국회 내내 박 대통령의 원내 기반을 넓히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정작 그는 그 후 공천헌금수수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한 후 출소했다.
그는 그 후 공식정치활동을 할 수 없었으나 대선에 앞서 꾸준한 물밑조직 관리에 들어간 가운데 그의 행보는 대선과정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대선기간 박 대통령이 국민대통합 행보일환으로 이희호 여사와 김지하·이외수 시인 등을 만난 것 역시 그가 다리를 놓았다는 후문이다.
그의 국회재입성으로 청와대는 나름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반면 박 대통령 개인입장에선 대선일등공신인 그에게 나름의 보은을 하게 됐다. 또 향후 그의 정치력 발휘를 통한 현 국정원 무게를 덜 기대를 묻히는 일거양득의 계기를 맞은 양태다.
따라서 야당과의 관계도 좋은 그는 향후 ‘야당 달래기’ 미션수행에 나설 전망이다. 또 당장은 특별한 당내 당직을 맡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랜 정치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을 물밑에서 도울 가능성이 크다.
당내에선 특유의 친화력으로 흔들리는 친박계 구심역할을 하면서 박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잠재우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정치는 국회, 청와대는 국정에 전념한다’는 원칙을 세운 바 있다. 청와대의 최근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여당 내 정치실종이어서 그에게 보완의 기대가 쏠리는 분위기다.
또 대야관계 경우 국정원 대선개입의혹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물밑접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 민주당이 국정원 대선개입의혹 정쟁와중에 박대통령·청와대에 총공세를 펴고 있는 만큼 물밑접촉을 통해 야당달래기에 주력할 전망이다. 다만 ‘올드보이’ 논란극복이 관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